세리에 A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형 호날두 선수의 유벤투스와
AC밀란 인터밀란 나폴리 라치오 등등
전통의 명가들이 속해있고 지금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다시 세리에 A 승격을 노리는 이승우 선수의 베로나가 속했던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 A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칭 | 세리에 A |
대륙 | UEFA |
축구협회 | FIGC |
주최 기관 | 레가 세리에 A |
개최 주기 | 매년 |
시즌 시작 | 8월 |
시즌 종료 | 5월 |
하위 리그 | 세리에 B |
대륙 대회 | UEFA 챔피언스리그 , UEFA 유로파리그 |
국내 대회 |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설립 연도 | 1898년 |
역대 시즌수 | 117시즌 |
최다 우승팀 | 유벤투스 34회 우승 |
세리에 A(이탈리아어: Serie A)는 이탈리아의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이며, 스폰서십으로 세리에 A TIM이 공식 명칭이다.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 세리에 A에서 주관한다.
FIGC 공인 하에 1898년 대회가 첫 대회로 인정되었으며, 현재의 전국 단일 조로 구성된 리그방식은 1929년부터 시행했다. 가장 많이 우승한 구단은 34번을 우승한 유벤투스이며, 인테르는 단일 조 역사 이래로 강등의 역사가 없는 모든 시즌 참가 구단이다.
세리에 A는 UEFA 계수에 따라 3위에 올라있으며, 이는 스페인의 라리가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다음이다.
1929-30 시즌은 세리에 A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리그였으며, 지역단위의 조로 구성된 리그를 전국 단일 조로 통합된 리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순위와 대진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보다 공정한 방법인 리그전으로 순위를 정하게 됐다. 리그의 구단 수 구성을 16개 혹은 18개 사이에서 바뀌고 바뀌는 과정들은 있어왔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규정의 개정은 없었고, 참가 구단 수는 2004-05 시즌부터 20개 구단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승점에 관해서는 승리를 거둘시 3점이 부여되며(1994-95 시즌 전까지는 2점 이었다), 무승부에는 1점, 패배에는 승점이 주어지지 않는다. 최종 순위 결정 시 동일 승점의 다수 구단이 있는경우 아래의 순위결정 기준이 적용된다. 적용 순서대로 상대 전적 승점, 상대 전적 득실차, 종합 골 득실차, 종합 득점 수, 제비 순이다. 과거 2005년 이전가지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별도로 가지는게 관행이었다.
38 라운드까지 종료된 후 1위 구단은 스쿠데토와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받는다. 리그 2~4위 팀들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진출 자격을 부여받으며, 리그 5~6위 팀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은 유로파리그 진줄 자격을 받는데,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과 5위팀은 조별리그, 6위팀은 2차 예선 진출권을 받는다. 만약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이 리그 순위 6위권 이내에 있다면, 5, 6위 구단이 조별리그로, 7위 구단이 2차 예선으로 진출할 수 있게된다. 리그 하위 3개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며, 세리에 B에서 승격하는 팀들로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우승 구단은 그 다음시즌 동안 자신의 유니폼에 스쿠데토를 붙일 수 있는데, 스쿠데토는 이탈리아 삼색기가 그려진 방패모양의 뱃지이며, 이는 제노아가 우승한 1924-25 시즌부터 시작됐다. 1960-61 시즌부터 우승팀은 코파 캄피오니 디탈리아라은 우승 트로피를 수여 받았으며, 이는 공식 세리에 A 트로피다.
1958년 움베르토 아녤리의 아이디어로 세리에 A에서 10번의 우승을 거둔 구단에게 특별한 별을 수여하기로 정했다. 황금색의 오각별 모양의 뱃지는 유니폼에 부착되는데, 보통 구단 로고와 함께 있는걸 볼 수 있다. 유벤투스가 1957-58 시즌으로 10번째 스쿠데토의 업적을 이룩으며 이 황금별을 가져갔는데, 이로서 유벤투스는 세계 최초로 기념 뱃지를 유니폼에 부착하는 구단이 됐다 이후로 이탈리아에서는 인테르와 밀란이 10번째 우승을 거두며 황금별을 가져갔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축구계에 있어 유일하게 20, 30번의 세리에 A 우승으로 1개 이상의 별을 부착하는 구단이다.
1898년에 시작된 세리에 A는 초창기 약 20년 동안은 아마추어 구단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중의 관심이 낮았으며,[8] 이 기간동안 첫 번째 이탈리아 챔피언이 된 제노아와 프로 베르첼리가 대부분의 우승을 차지했다.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은 리그 원년인 1898년에 조직되어 리그를 주최 및 주관했다. 1921년 축구리그 개혁을 주장한 비토리오 포초가 새로운 리그를 만들자는 '포초 계획'을 세웠고, '포초 계획' 측과 FIGC간의 협정이 불발되며 이탈리아에 2개의 리그가 공존하는 상황이 생겼다. 신생 리그의 1921-22 시즌은 이탈리아 축구 동맹(CCI)이 주관하여 세리에 A 역사상 유일하게 FIGC가 주관하지 않은 시즌이 됐다. 이듬해 '콜롬보 타협'을 통해 FIGC가 '포초 계획'을 수용하며 재결합에 성공을 한다.
1920년대 말 까지 이탈리아 축구 리그는 리그전으로 진행되는 여러개의 지역단위 조와 각 조의 승자들이 참가하는 토너먼트의 구성이었다. 하지만, 1929-30 시즌부터 '세리에 A'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지역단위 조의 구성을 폐지하고(1909-10시즌에 한번 시행됐던) 통합된 단일 리그전의 구성으로 개편을 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1930년대의 시작은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크나큰 분기점이 됐다. 최다 우승팀 유벤투스, 국제 대회 트로피 수집가 밀란, 강등의 역사가 없는 인테르 구단을 부르는 소위 '트레 그란디'(빅 3)의 새 시대가 열렸다.수 많은 팬들이 생겨났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사이클링을 대신하여 명실공히 축구를 이탈리아 국민 스포츠로 만들었다.
전간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시기에 한해서 밀라노-토리노(밀란, 인테르와 유벤투스)라는 이탈리아 축구의 패권은 볼로냐와 또다른 토리노 구단인 토리노에 의해 심심치않게 무너졌다. 이후 수십년동안 볼로냐, 토리노와 더불어 피오렌티나, 라치오, 로마, 나폴리가 간헐적으로 스쿠데토를 들어올리긴 했으나, 연패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로마는 1941-42시즌에 최초로 북부지방에 쏠려있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거둔 최초의 중남부 구단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보다 더 드문 위업을 남긴 구단으로는 카살레, 노베세(상기된 FIGC와 CCI의 분열로 강팀 및 인기 구단들이 CCI로 유출된 FIGC 1921-22 시즌에서 거둔 우승)가 20세기 전반에, 후반에는 칼리아리, 베로나, 삼프도리아가 있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조별예선 탈락 후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는 해외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1981-82시즌에 이르러 이탈리아 축구의 순위가 역대 최하인 12위까지 떨어지고 벨기에,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제2등급 리그로 분류되는 수모를 겪는다.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위의 금지법은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세리에 A는 하이테크한 훈련시스템과 외국인선수 시장 재개방으로 질적으로 향상되며 1980, 90년이되며 명성에서나 업적에서도 최고를 찍게된다.당시 세리에 A 팀은 유럽 클럽 대항전에 꾸준히 좋은 성적들을 남겼다. 특히 1989-90시즌에는 이탈리아 축구팀이 3개의 주요 UEFA 클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하는 역사적인 대업을 이룬때였다. 당시 이탈리아 리그는 수 년동안 UEFA 계수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 후반 세리에 A는 여전히 유럽 주요 리그로 남아있지만 안개 속에 있는 상태다. 이는 배팅, 팬 및 관중의 감소,구단의 불안정한 재정 상태, 기술적 부분의 저하 등이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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